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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김숨 작가를 만나다

■ 일시 : 2026년 8월 10일(월) 16:00~20:00       ■ 장소 : 서대문50플러스센터 회의실



■ 참가자 : 강성자 대표 외 4명


■ 향후 계획

   * 9월 도서 선정 :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사진에서 느껴지는 김숨 작가의 이미지는 한강 작가와 언뜻 비슷하기도 했다...며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를 돌아보았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 작품 속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나 문장, 

김숨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상 등...

지니님이 추천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로 북모임을 진행했다.


2026년 08월 10일 책읽는 풍경_엘리

 

 

도서 :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김숨, 2009년

 

1. 김숨


1974년 울산 출생. 1997년 「느림에 대하여」로 등단했고, 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 노동과 가족, 여성의 몸과 기억을 집요하게 다뤄온 작가. 이후에는 위안부 피해자와 민주화운동 같은 역사적 기억으로 작품세계를 넓혀왔다.

 

작품으로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중편소설 『듣기 시간』 등이 있다.

 

 

2.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은 2009년에 발표된 김숨의 첫 성장소설. 작품 속 시기는 공식적으로 1980년대, 장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의 농촌 마을. 일곱 살 동화가 할머니 집에 맡겨진 뒤 열여섯 살 무렵까지 성장하는 이야기.

 

그대들은 결코 더러운 자와 깨끗한 자를,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마치 검은 실과 흰 실이 함께 짜여지듯이

태양의 얼굴 앞에 함께 서 있으므로.

칼릴 지브란 (p.165, p.234)–정희 언니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소설의 제목부터가 역설적이다. ‘죄인’이라는 말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임으로써, 죄인이라 불린 사람들의 삶 속에 깃든 그 무엇을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라 명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3. 1960~70년대에서 80년초 까지 한국 사회는?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가 내 유년의 풍경과 흡사해서 놀랐다. 김숨은 1974년생으로 나보다 열두 살이나 아래다. 그런데도 소설 속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는 마치 내가 자란 시절을 옮겨놓은 듯하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초까지, 적어도 농촌과 서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풍경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동네 카페에 앉아 김숨의 소설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옆에 쌓여 있던 책더미에서 벽돌처럼 두툼한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을 넘기자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진 속에서 하나둘 되살아나는 듯했다.

 

           


4. 동화, 동화!


-무덤은 어떻게 버려지나_에서 아버지는 정말 돌아왔나..

 

아버지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 가랑이에 쑥부쟁이를 심어놓고는 가버렸다. 나는 가랑이를 벌리고 누워서는, 아버지가 황기나무 사이로 성급히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p.173~177)

 

동화가 성폭력을 당한 것이라면 이보다 더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는 더는 없으리라.

 

*동화가 성추행과 성희롱의 대상이 되는 예는 소설 속에서 더 찾아 볼 수 있다.

 

 

5. 김숨의 역량


-잉어가 고아지는 밤

육십 촉 전구 불빛 아래, 태식 삼촌은 식칼로 자라의 모가지를 땄다. 그가 식칼 든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리는 순간, 식칼 그림자가 내 정수리를 향했다. 나는 입을 찢듯이 벌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쥐어뜯듯이 감쌌다. 식칼이 자라의 모가지를 단번에 내리치는 것을, 나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자라의 모가지가 댕강 잘리는 순간, 사방으로 튄 핏방울들을…… 썩고 짓무른 앵두 같기만 한 핏방울들을…… 잘린 모가지로 쿨럭쿨럭 피를 토하면서도 자라는 네 다리를 저벅였다. (p.120)

 

검은 솥에서 잉어가 고아지는 동안, 마을은 괴이한 열기와 냄새로 들끓었다. 지붕 위마다 고양이들이 혀라도 짓씹듯 울어대고,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오 씨 아저씨는 머리가 홱 돌아 이발관 문짝을 왕창 부수었다. 인자 아줌마는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랐고, 장대 아저씨는 낫을 휘둘러 성한 담뱃잎들을 똑똑 따고 다녔다. 축사 사람들은 버려진 파밭 한복판에서 개를 때려잡았다. 춘자 고모는 껌을 두 통이나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대며, 발톱과 손톱을 온통 새빨갛게 칠했다. 그리고 골방의 할아버지는 똥을 무더기무더기 싸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미쳐가는 동안, 잉어는 푹 삶아져 형체도……(p.121)

 

작가 김숨의 문학적 정수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자라의 목을 베는 광경을 지켜보는 아이의 공포와 피비린내, 술 냄새, 마을을 휘감은 기괴한 열기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거울을 닦는 동안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머니의 집 거울만 흐려터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방앗간 할머니의 자개 거울도, 옥천 할마의 막걸리 얼룩 범벅인 사각 거울도, 춘자 고모의 달걀처럼 둥근 손거울도, 인숙네 거울도, 미정네 거울도, 인자 아줌마네 거울들도 흐리멍덩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주부이발관의 큼직하고 네모난 거울들도 맑지를 못하고 얼룩덜룩 어렴풋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러니까, 몽롱하고 기괴하게 뭉개진, 금방이라도 저 멀리로 가라앉을 듯 어렴풋한, 그리고 삭아가는 오이처럼 쭈글쭈글한 자신들의 얼굴을 아침저녁으로 증거하듯 들여다보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울을 닦는 동안 마을 사람 전부가 실은 거울 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쑥불쑥 갖고는 했다.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다던 옥천 할마마저도. 그러니까, 쌀뜨물처럼 흐린 거울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리고 말 존재들로 살아가고 있다는…… 어쩌면 나는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거울을, 깨알만 한 얼룩 한 점도 없도록 말끔히 닦아놓은 뒤에야 이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아놓은 뒤에야,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이 아닐까. (P.59)

 

작가는 마을 사람들을 마치 흐릿한 거울_흐려터진, 얼룩 범벅인, 흐리멍덩한, 맑지를 못하고 얼룩덜룩 어렴풋한_ 속에 비친 형상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리고 말 존재들’로 그려내고 있다.

 

***김숨의 적막, 고요


1) ‘내가 거울을 닦는 동안, 마을은 텅 빈 듯 적막에 휩싸였다. (.......)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나만 남겨두고 다들....거울이 삼켜버렸나?’ (p.94~95)

2) <구덩이>_문학사상 2011년 7월호

‘닭처럼 커다란 새가 박제된 시간 같은 적막 속을 저 혼자 날았다.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거지?’

 

3) <국수>_대산문화 2011년 여름호

‘어찌나 고요한지, 반죽을 빚고 있는 나 자신과 까무룩 잠든 당신만이 유일한 생존자 같습니다.’

 

***김숨의 소설집 《국수》(창비, 2014)에 「뿌리 뽑힌 자들의 비명」,(이병창) 발문 중에서

 

‘필자는 김숨이 우리 시대 카프카가 아닐까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김숨의 소설들이 주는 느낌은 카프카의 <변신>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변신>에서 주인공은 마침내 자신이 벌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몸을 밀면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자기 집을 떠난다. 그때 어떤 희미한 빛이 먼 곳에서 비추어온다.“

 

6. 나의 유년의 풍경과 겹쳐지는 부분들

 

동네에서 우리 집만큼 대청마루가 넓은 집은 없었다. 대청마루 끝에는 유리 미닫이문이 열 짝 넘게 이어져 있었다. 본채 옆으로 돌아가면 벽돌을 둥글게 둘러 만든 제법 큰 화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 내 키를 훌쩍 넘긴 아주까리, 두껍고 넓은 녹청색 잎의 컴프리, 덩굴을 뻗어 오르며 주황빛의 울퉁불퉁한 열매를 매단 여주, 그 아래 피어난 작은 채송화와 나팔꽃, 분꽃 등이 한데 어우러져 화단은 언제나 생명력으로 넘쳐났다.

 

나는 19○○년에 태어났으니, 그 화단에 대한 기억은 내가 대여섯 살이던 1960년대 후반의 것이다. 아마 1970년대 초쯤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화단을 허물어 그 자리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을 지었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세를 놓았다.

 

그 방에는 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세 들어 살았다. 부부싸움이 잦았는데, 싸움이 시작되면 아기 엄마의 비명과 함께 무언가를 집어 던지고 깨뜨리는 소리, 두 사람이 뒤엉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무섭게” 싸우는 부부였다.

 

이 기억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어, ‘축사의 이방인들’에 나오는 싸우는 장면과 겹쳐 떠올랐다.

 

그러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물음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왜 그 아름다운 화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방을 지어 세를 놓아야 했을까. 1970년대에 다섯 아이를 건사하는 일이 힘에 부치셨던 것일까. 방세로라도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 살림에 보태야 했던 것일까.

 

*꽃을 좋아하고 가꾸는 일에 늘 정성을 쏟았던 어머니는 사라진 화단이 못내 아쉬우셨던지, 대청마루에서 바라보이는 담벼락 아래에 좁고 기다란 화단을 새로 만드셨다.

 

생계를 위해 아름다움을 내어주면서도 끝내 아름다움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던,

 

그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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