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26년 7월 6일(월) 17:00~20:30 ■ 장소 : 서대문50플러스센터 톡톡회의실
■ 참가자 : 강성자 대표 외 회원 5명
■ 향후 계획
8월 북모임, 김숨 장편소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문학과지성사
* 엘리님의 독서 후기를 공유합니다♡
2026년 07월 06일 책읽는 풍경_엘리
도서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2021년
들어가는 말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
책 뒤표지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글 중 한 대목이다. 처음 한강 작가의 작품으로 『검은 사슴』을 읽으며 느꼈던 경외심도 어쩌면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 사슴』을 읽으면서 한강 작가가 얼마나 힘들여 한 문장 한 문장을 쌓아가고 있는지가 느껴져 왔었다.
신형철 평론가는 그 점을 너무도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지만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여러 번 손에 놓았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던 책이다. 이번에는 ‘눈(雪)’에 주목하며 읽어보았다.
2016년에 출간된 『흰』에도 눈과 관련된 글들이 다수 실려 있다. 한강 작가에게 ‘눈’은 소설의 서사를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눈, 눈송이들, 만년설, 진눈깨비, *눈보라, 흩날린다, 갈대숲 등은 『흰』, (2016년)에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눈보라(p.64)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검은 사슴』에서도 눈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p.368) 눈썹을 가볍게 스치는 정도이던 눈발은 비탈길을 내려오는 사이 점점 굵어졌다.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귀를 에는 듯한 바람이 눈발을 날렸다.
어둠 속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맞은편 검은 산 위로 무수한 흰 획들이 힘차게 그어지고 있었다.
(p.428) 무덤만 남아 있는 화전 마을의 겨울밤이었다. 사방으로 이십 리 안에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산짐승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중이라면 큰 짐승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토끼의 발자국은 보였고 산꿩도 있었다. 그렇다면 산돼지 따위가 살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사위는 숨막히게 조용했다. 눈이 쌓이는 소리도 들릴 것 같았다. 아니, 바로 이 적요, 모든 소리를 지워버릴 만큼 커다란 이 적요가 바로 눈 내리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이 골짜기는 마치 땅속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조금 섬뜩하리만치 흰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오히려 마치 어두운 터널을 까마득히 비틀거리며 매달려
내려온 것 같았다. 수십 리 지하의 어둠 속에 명윤과 나 두 사람만이 고립되어 갇힌 것 같았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눈(雪)’
(p.44~45) 눈은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p.55) 물기가 많고 입자가 작은 눈송이들이 가느다란 선들을 수직으로 그으며 낙하하고 있었다.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
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p.93) 하나의 눈송이가 태어나려면 극미세한 먼지나 재의 입자가 필요하다고 어린 시절 나는 읽었다. 구름은 물분자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고, 수증기를 타고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두 개의 물분자가 구름 속에서 결속해 눈의 첫 결정을 이룰 때, 그 먼지나 재의 입자가 눈송이의 핵이 된다. 분자식에
따라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결정은 낙하하며 만나는 다른 결정들과 계속해서 결속한다. 구름과 땅 사이의 거리가 무한하다면 눈송이의 크기도 무한해질 테지만, 낙하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p.133) 쉴새없이 부딪히는 턱이 빠질 듯 얼얼해, 눈 덮인 소매의 빳빳한 겉면을 잇새에 물고 버티다 퍼뜩 생각한다.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눈을 묘사하는 주요 대목들을 찾아보았다. 그중에는 눈이 만들어지는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도 있고, 그 원리를 알고도 끝내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 앞에서
압도되는 순간도 있다. 또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눈이 되는 순환을 통해 소설의 밑바탕에 흐르는 '순환'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도 있다.
이와같이 ‘눈’은 이 소설에서 엄청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 무겁고 커다란 ‘눈’의 상징성에서 벗어나 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눈’이라는 존재가 주는 경이와
미학에 더 주목하고 싶어진다.
이상하지, 눈은. (.......)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이를테면 눈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동시에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제주 4.3사건과 대학 친구
제주 사투리가 왕왕 나오는 대학 친구가 있다. 가끔 서울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져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는 친구다. 제주 본가에 내려가 바다 바람을 쐬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금세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에도 열이 실리곤 했다. 아버지가 겪은 4·3의 기억이 딸인 그 친구에게까지 깊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친구가 4·3을 이야기할 때조차 나는 그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아픔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이제야 친구의 아버지와 친구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면 믿을까.
* 작년에 친구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생전에 4·3의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고. 딸인 친구는 그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고, 한 권의 책으로도 펴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
(p.122) 함박눈을 맞으며 허리를 굽힌 채 걷는 노인의 모습이 차창 너머로 멀어진다. 그가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고개를 꺽고 돌아본다.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나의 혈육도 지인도 아니다. 잠시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작별을 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가?
(p.17)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p.73) 바람이 쎈 곳이라 그렇대. 어미들이 _홀홀히 짧은_이렇게 짧은 게. 바람소리가 말끝을 끊어가버리니까.
예) 하다-핸-하멘-하잰
(p.129) 내가 느끼기에 이 섬의 바람은 마치 배음처럼 언제나 깔려 있는 무엇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든 온화하게 나무를 쓸고 가든. 드물게 침묵할 때조차 그것의
존재가 느껴졌다.
(p.25) 물잔에 빠뜨린 각설탕처럼 내 사적인 삶이 막 부스러지기 시작하던 지난해의 여름, ....
(P.320) 무엇이 지금 우릴 보고 있나, 나는 생각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누가 있나.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책을 읽고 난 후의 이야기들
1. 한강 책 들 중 처음 읽었던 작품은?
2.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그 이유..
3.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난 소감 나누기
4. ‘눈’하면 떠오르는 기억, 경험, 추억 나누기
5. 인상적인 혹은 밑줄그었던 부분 나누기
기형도의 “눈”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기형도, "밤 눈“
*시작 메모
또 겨울이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밤눈」은 그즈음 씌여졌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삶과 존재에 지칠 때 그 지친 것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비유는 자연(自然)이라고.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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